이번 글에서 소개해 볼 영화는 압둘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2013년 작, <가장 따뜻한 색, 블루>입니다. '아니, 도대체 9년이나 된 영화를 왜 지금 소개하면서 뒷북을 치는 거야?' 싶지만, 저는 이 영화를 비교적 최근에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여운이 긴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이 여운과 깊은 마음을 더 늦기 전에 꼭 글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글을 써 봅니다.
영화 정보 소개

- 감독 : 압둘라티프 케시시 (튀니지 출신의 프랑스 감독입니다. 감독 활동은 1987년 혹은 그 이전부터 해 왔던 것 같은데, 저는 이 작품으로 케시시 감독을 처음 접하게 되었어요. 한 장면을 몇십 번씩 촬영한다는 걸 보니, 큐브릭 과의 감독인가 봅니다.)
- 제목 : 가장 따뜻한 색, 블루 (프랑스판 제목은 La Vie D'Adele - Chapitres 1 et 2, 아델의 삶 1부와 2부입니다.)
- 개봉 연도 : 2013년, 2014년 (한국 기준)
- 원작 : 쥘리 마로 (트랜스젠더 논 바이너리로, 쥘 마로로 불리길 선호한다고 합니다.)의 그래픽 노블 <파란색은 따뜻하다> (사실 원작과 영화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주인공들의 이름부터가 다릅니다. 여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본래 원작의 주인공 이름은 클레망틴입니다. 케시시는 비하인드 장면도 영화에 넣었다고 하는데, 스태프들은 클레망틴 역 배우의 이름인 아델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의 이름은 아델이 되었다고 합니다. 차차 설명하겠지만 원작은 '동성애'와 동성애에 관한 사회적 얘깃거리를 다룬다면, 영화는 '사랑'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춥니다.).
- 출연 :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 (엑사르코풀로스, 엑사르쇼풀로스 등 표기가 다양하지만 배우가 그리스계 프랑스인이기에 원어 발음을 차용했습니다.), 레아 세두 외
- 장르 : 로맨스, 드라마
- 러닝타임 : 2시간 59분 (다소 부담스러운 길이이긴 하나 개인적으로 적당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러닝타임이 더 짧았더라면 이렇게 진한 감동을 주진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 수상이력 : BBC 선정 21세기 100대 영화 및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 선정, 2013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 레아 세두,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 (보통 황금종려상은 대대적으로 작품이 수상하지만 배우가 수상한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그만큼 배우들의 명연기를 볼 수 있겠죠?^^).
- 개인 평점 : 10점 만점 - 9점 (저는 정말 졸작이거나 제 취향과 도저히 맞지 않는 영화가 아닌 이상 평점을 거의 만점에 가깝게, 후하게 줍니다. 전문가도, 평론가도 아니고 그저 영화를 좋아하기만 하는 영화 문외한인 제가 감히 영화에 들어간 감독과 배우들의 노고를 짜디짜게 별 몇 개로 평가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1점이 깎인 이유는 너무 길고 자세한 정사 장면 묘사 때문입니다. 차차 이야기해나가도록 하죠!)
줄거리 소개
(영화를 본 지 시간이 조금 흘러서, 줄거리가 아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자세하게, 영화를 실제로 관람한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 그래도 시간이 나시면 직접 감상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 작성해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시다면 읽지 않는 것을 강력하게 권장합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열 다섯 아델이 파란 머리의 여대생 엠마를 만나 사랑을 하고, 아픔도 겪으며 성장하는 내용입니다.
아델은 문학을 사랑하는 고등학생입니다. 원만한 대인관계, 학교 선배와의 썸 등 평이하고 나쁘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와의 데이트를 위해 나가다가 횡단보도에서 우연히 파란 머리의 신비로운 엠마를 만나게 됩니다. 둘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짧은 시간 동안 서로를 깊고,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아델은 설렘과 혼란스러움이 뒤섞인 감정을 느낍니다. 자동차가 가득한 횡단보도에서 오랫동안 멈춰 서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이 장면은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통하죠. 아델과 엠마의 강한 눈빛을 느껴 볼까요?^^) 30초부터 보시면 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2oTGaKkpdU
아델은 엠마에게 강하게 끌립니다. 이 날 이후 아델은 엠마를 생각하며 자기위로를 합니다. 또한 아델의 동성 친구가 아델에게 장난으로 키스하자, 아델은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친구에게 나아갑니다. 하지만 당황스러워하는 친구의 반응에 상처를 받죠. (상처를 받았다고 통상적으로 표현했지만, 아델은 강합니다. 친구의 거절 의사를 확인한 후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 자리를 뜹니다.) 이러한 작은 사건사고들 이후 아델은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학교 선배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델의 친한 친구 발랑틴은 아델을 게이 바에 데려갑니다. 발랑틴은 자신의 친구들과 놀기 시작하고, 아델은 그저 주위를 돌아봅니다. 그러자, 한 노인이 아델에게 "사랑에는 성별은 존재하지 않아."라는 말을 합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아델은 자연스레 레즈비언 바로 향합니다. 아마 엠마를 찾고 싶었을 겁니다. 놀랍게도, 엠마는 있었습니다. 아델에게 한 여자가 관심을 보이자, 엠마는 그 여자에게 다가가 아델이 자기 사촌이라며 건드리지 못하게 합니다. 엠마는 아델에게 딸기 우유를 시켜 줍니다. (이 장면에서 재미있었던 게, 원작 그래픽 노블에서는 엠마의 딸기 우유를 마음에 들어 하지만, 영화에서 아델은 우유가 역겹다고 합니다. 처음에 이 차이를 알고 별 건 아니지만 꽤 웃었습니다.) 엠마는 미술을 전공하는 여대생입니다. 좋아하는 화가를 묻자, 아델은 "피카소... 피카소, 그리고... 피카소."라고 답합니다. (이 장면에 관해서 깊게 듣고 싶으시다면, 팟빵의 명화남녀 시즌 2 2편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아델이 학교를 마치고 학교를 나서자, 놀랍게도 학교 앞에서 엠마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학교 친구들은, "여자야 남자야?", "정말 레즈비언 같다." 등등의 편견 섞인 말을 내뱉습니다. 아델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엠마에게로 다가갑니다. 친구들이 아델을 계속 불러도,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곧장 엠마에게로 직행하죠. 본능이 의식을 집어삼킨 것 같았습니다. 엠마는 아델과의 만남을 초반에는 조금 주춤하는 듯 보였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엔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 아델이 레즈비언 바에 갔다는 소문이 학교에 퍼집니다. 학교 친구들은 맹렬히 혐오와 편견을 가지고 아델에게 소리치죠. 그래도 친구 발랑틴이 잘 위로해준 덕에 아델은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영화와 원작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이 장면은 별로 중요하게 비춰지지 않습니다. 그저 작은 일상처럼 말이죠. 하지만 원작에선 이러한 장면이 중요한 장면으로 나옵니다. 영화와 원작에서 각각 무엇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한눈에 들어오는 장면이었습니다.)
아델과 엠마는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아델은 엠마의 그림 모델이 되어주고, 서로의 부모님도 만납니다. (엠마는 부모님에게 아델을 여자친구라고 소개하지만, 아델은 부모님에게 엠마를 그저 멘토, 철학 선생님으로 소개합니다. 여기서부터 무언가 삐끗하죠.) 함께 피크닉도 가고, 미술관 데이트도 합니다. 미술관 데이트 장면에서는 나체 조각상 등을 비춰줍니다. 엠마는 조각상을 보고, 아델은 엠마를 봅니다. 아델은 조각상에 엠마를 투영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첫 만남만큼이나 아름다운 키스 장면을 한 번 감상해 봅시다.

시간은 흐르고, 엠마의 파랗던 머리는 금발로 변합니다. 엠마와 아델은 서로 너무 다른 것을 느낍니다. 엠마는 자유를 추구하고, 아델은 안정성을 추구합니다. 아델은 문학을 사랑하고, 장래희망은 교사입니다. 그에 반해 엠마는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예술과 자신의 행복을 중요시합니다. (마치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같지 않나요?) 엠마는 전시회를 열게 되고, 아델과 함께 엠마의 친구들을 초대해 조촐한 기념 파티를 열기로 합니다. 여기에서도, 친구들과 예술 이야기를 정신없이 하는 엠마를 보고 아델은 외로움을 느낍니다. 엠마는 자신의 친구들과는 너무 다른 아델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래도 서로는 서로를 너무 사랑합니다. 엠마는 친구들에게 아델을 자신의 뮤즈이자 영감의 원천이라고 소개하죠.
어느덧 아델은 엠마와 있어도 외롭고, 엠마도 이전처럼 아델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진 않습니다. 아델에게 점점 소홀히 대하고, 미술에 대해서만 친구들과 이야기합니다. 전시회에 문제가 생겼는지 화가 난 엠마를 아델은 도우려 하지만, 엠마는 별로 그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해줄 마음이 없는 듯 보입니다. 결국 아델은 외도를 하게 됩니다. 직장 동료와 말이죠. 하지만 거짓말로 이루어진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요? 엠마는 아델의 외도를 알게 됩니다. 엠마는 정말 분노해서 나가라고, 짐 싸서 나가라며 격노합니다. 이때 아델은, 제 머릿속에 강렬히 남은 대사 중 하나인 "널 사랑해! 난 못 떠나! 너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대사가 정말 슬펐습니다. 감상평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엠마는 결국 아델을 내쫓고, 아델은 펑펑 울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별 후, 아델은 빨간 수영복을 입고 새파란 바다로 뛰어듭니다. 이 장면 역시 명장면으로 꼽히는데, 한번 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G64-M93V3M8
이별 후에도 긴 시간이 흐릅니다. 아델과 엠마는 한 카페에서 재회하죠. (이 카페 인테리어도 파란색을 과감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델에게 블루는 벗어날 수 없는 색인가 봅니다.) 둘은 많이 변해 있습니다. 엠마는 금발이고, 아델의 머리카락은 차분해져 있죠. (첫 만남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아델은 머리를 풀어헤친 채 묶고 다닙니다.) 둘은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아델은 엠마를 잊지 못한 듯 엠마에게 키스합니다. 엠마도 처음엔 거부하지 않지만, 이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거부합니다. 둘은 대화합니다.
아델 : 널 이제 귀찮게 하지 않을게. (아델이 엠마에게 먼저 만나자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엠마 : 넌 귀찮은 적 없어.
아델 : 아직 날 용서하지 않았어?
엠마 : 용서했어.
아델 :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진 않는 거고?
엠마 : 응. 다른 사람이 있어. 너도 알잖아. 하지만 너에겐 무한한 애틋함을 느껴. 앞으로도 그럴 거야. 평생 동안.
(도대체 어떻게 이런 대사를 쓸 수 있었을까요? 저는 이 장면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아델과 엠마는 다시 헤어집니다. 더 이상 아델도 엠마에게 미련이 남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후에, 아델은 엠마의 전시회에 초청받아 갑니다. 엠마는 이미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델은 천천히 그림을 감상합니다. (이 부분 대사와 엠마의 그림이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양해 부탁드립니다.) 엠마의 그림 스타일은 많이 바뀌어 있습니다. 파란색을 많이 사용했던 그림이 빨간색을 많이 사용한 그림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엠마의 친구는 말합니다. "이전 그림체는 올드 엠마를, 새로운 그림은 뉴 엠마를 말하지." 엠마도 많이 성장했습니다. 아델 못지않게요.
아델은 별안간 무엇을 깨달은 듯 전시회장을 나갑니다. 파란 드레스를 입고, 미련이 남지 않은 듯 걸어갑니다. 아델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길게 비추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감상평
이 영화는 저에게 많은 것을 깨닫고 성장하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로맨스 영화를 개인적으로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게 많다고 생각해서요. (물론 여기서의 사랑은 성애적 사랑을 뜻합니다. 연애적 감정을 말하는 거죠. 성애적 사랑이 아닌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영화를 사랑하기에 쓰는 것이고, 음악을 듣는 것도 음악을 사랑해서 듣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조금 달랐습니다.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와는 확연히 달랐죠. 이 영화는 해피엔딩일까요? 사람들의 기준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주인공들이 알콩달콩 행복하게 연애하는 것을 해피 엔딩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는 배드 엔딩이죠. 하지만, 각 주인공들의 성장과 후련함을 중요시한다면 이 영화는 해피엔딩입니다. 결국 엠마는 전시회도 열고, 가족도 꾸렸고 아델은 선생님이라는 꿈도 이루고 철없는 소녀에서 어른으로 성장했기 때문이죠. 저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사랑? 연애? 이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저는 '성장' 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델의 성장이죠. 아델은 정말 많이 성장했습니다. 엠마를 통해서 성장했고, 사랑을 통해, 이별을 통해 성장했습니다. 영화 초반부에 아델이 스파게티를 먹고, 몰래 숨겨둔 초콜릿을 먹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델은 정말 어린이처럼, 게걸스럽게, 맛있게 먹습니다. (케시시 감독이 아델의 음식 먹는 입이 마음에 들어서 캐스팅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다. 저도 이 영화를 보고 다음 날 스파게티가 너무 먹고 싶어서 사 먹었기에..^^) 아직 철없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죠.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봅시다. 미련 없이 걸어가는 아델의 뒷모습은 정말 성숙합니다. 그 누구보다요.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아델의 성장을 뼈아프게 느낀 장면은 엠마에게 이별 통보를 들은 후 펑펑 울며 걸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역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지만, 이상하게 저는 그것이 어린애 같은 면을 벗겨내는 장치라고 느껴졌습니다. 또한 아델에게 파란색은 정말 아프고 아픈 색이었을 겁니다. 파란 머리 엠마, 서로에 대한 미련을 벗어낸 파란색 인테리어의 카페, 완전히 성숙할 수 있게 해 준 전시회에서의 파란 드레스. 아델에게 파란색은 '가장 따뜻한 색'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파랑은 차갑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불꽃에서도 가장 뜨거운 부분은 파란색입니다. 또한 상처가 난 후에 생기는 멍도 파란색이죠. 상처가 나면 처음에는 붉은 피가 나거나 빨갛게 붓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파란 멍으로 변하죠. 멍이 들면, 우리는 상처가 아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델을 성장통에서 벗어나게 해 준, 파란색.
저는 아델은 빨간색, 엠마는 파란색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아델 주위에서는 빨간색이 많이 보입니다. 아델이 좋아하는 파스타도 붉은 계열, 아델의 손톱에 칠해진 매니큐어도 빨간색, 아델이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에서 입은 수영복도 빨간색. 빨간색, 하면 보통 사람들은 뜨겁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저는 아까 파란색도 뜨거운 색이라고 말했었죠. 모순됩니다. 그래서 저는, 아델과 엠마는 둘 다 뜨거운 사람이지만 결국 다른 방식으로 뜨거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말했듯이 아델은 안정성을 추구하고 엠마는 자유분방을 추구합니다. 일반적인 사상으로 빨강은 뜨거움, 파랑은 차가움이듯이, 격식 그대로의, 사회 통념 그대로의 뜨거움을 추구하는 아델은 빨간색, 자유롭고 예술을 사랑하며 독특한 뜨거움을 추구하는 엠마는 파란색입니다. 둘은 본질적으로는 같지만 결국 너무나도 다르기에, 이별을 해야 하는 것이죠.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엠마와 아델의 첫 만남과 대화부터 무언가 위태위태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둘은 정말 사랑하지만, 무언가 퍼즐 조각이 잘못된 느낌이었죠. 위태롭고 서로 어울리지 않지만 뜨거운 그들은 서로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합니다. 마지막 장면 이후에도, 저는 아델과 엠마가 가끔씩은 서로를 그리워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느끼는 사랑은 더 이상 성애적 사랑은 아니겠죠. 엠마가 말한 것처럼 아델과 엠마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애틋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면 장면과 각각의 대사에 대해 말해 볼까요. 아델이 엠마에게 말했던, "너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 라는 대사는 제 마음을 강타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선, 참 유치한 대사죠. 유치하고 귀여운 로맨스 코미디 영화에 나올 법한 대사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 대사는 정말 슬프고, 아델의 마음을 완전히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아델은 엠마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대사를 말함으로써 아델은 엠마에게서 벗어나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아이러니하죠. 저도 이유를 자세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또한, 아델이 이별 이후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을 봅시다. 파란색. 영어로 우울함을 뜻하기도 하죠. 또한 파란색은 자유롭고 탁 트인 색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빨간 수영복을 입고 파란 바다로 몸을 던지는 아델은 자유로워 보이면서도 우울해 보였습니다. 자유는, 이제 엠마에게서 미련을 버리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서 우러나온 것이고, 우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엠마가 너무 그리운 아델의 본능이겠죠. 우울한 동시에 자유를 느낄 수 있을까요? 당연합니다. 내가 너무 사랑하지만 그것이 나를 죄어왔는데, 그것에게서 벗어났을 때 느낄 수 있습니다. 흔히 이렇게 말하죠. '내 삶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아델의 경우에는 그 반대 같네요. 첫 만남 장면에 관해서도 말해 봅시다. 케시시 감독은 이 장면을 셀 수 없이 촬영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감독을 좋아하진 않아서 (데이비드 핀처, 스탠리 큐브릭, 제임스 카메론, 미하엘 하네케 감독 - 여담으로, 가따블이 2013 칸느 수상 전, 2012 칸느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하네케의 <아무르>였습니다! - 등이 생각납니다.) 감독이 잘했다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결과물을 정말 감탄할 만합니다. 엠마의 눈빛과 아델의 눈빛.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설렘과 놀라움, 익숙함과 낯섦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서로의 눈빛은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는데요, 레아 세두와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장면입니다. 또한, 이별 후 아델과 엠마가 카페에서 만나는 장면도 정말 좋아합니다. 많이 변한 엠마와 더 많이 변한 아델. 성장한 아델이지만 엠마를 보자 또다시 어린아이로 변하는 것 같았죠. 엠마의 손을 입에 넣는 장면에서 더욱 그렇게 느꼈습니다. 아기들은 손가락 빠는 것을 좋아하죠. 아델에게 엠마는 그렇게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나를 존재하게 해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제목과 포스터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사실 저는 프랑스판 원제, '아델의 삶 1부와 2부' 가 더 마음에 들지만, 영화의 주제와 부합하는 제목은 아무래도 '가장 따뜻한 색, 블루'입니다. 처음 프랑스판 제목을 듣고, '혹시 이거, 시리즈 영화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부와 2부라는 것이 제목의 일부라고는 생각지 못했죠.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1부와 2부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엠마를 만나기 전과 후? 엠마와의 이별 전과 후?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아델만이 알겠죠. 아니, 사실 아델도 잘 알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너의 삶은 어디서부터가 1 부고 어디서부터가 2부니?'라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래도 우린 관객으로서 추측은 해 볼 수 있습니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말이죠. 저는, 엠마와의 이별이 1부와 2부의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이별을 기점으로 아델이 매우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판 제목이 좋은 이유는 아델의 삶이 3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인데요, 우리는 스크린이 내려가 알지 못하지만 아델은 더욱 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어쩌면, 엠마보다 더 사랑하게 될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또 다른 이별을 겪을 것이고, 꿈을 이룰 것이고, 차차 나이가 들 것입니다. 3부의 끝은 어디고, 또 아델의 삶은 몇 부작 일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아델의 삶의 다른 부작은 장르가 무엇일까요? 1부와 2부의 장르는 로맨스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습니다. 저를 더 많이 상상할 수 있게 해 주기에, 저는 원제를 좋아합니다. 또한 포스터에 관해선, 정말 포스터를 좋아합니다. 아주 많이요. 엠마는 눈을 감고 있고, 아델은 눈을 뜨고 엠마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엠마의 머리 색 이외에는 포스터가 전체적으로 무채색을 띠고 있습니다. 아델의 삶이 엠마로 인해 물들었다는 뜻일까요? 정말 아름다운 포스터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 중 하나입니다. (다른 영화로는 타락천사, 미드나잇 인 파리, 아멜리에, 양들의 침묵 등이 떠오르네요.)
그럼 이제 아쉬운 점을 다루겠습니다. 바로 노골적인 정사 장면인데요. 너무 길고, 너무 자세하고, 너무 빈번하고, 너무 과했습니다. 이 장면들만 아니었어도 저는 만점을 줬을지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모든 영화에서 굳이 끼워넣는 성적인 장면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델과 엠마를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장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사를 암시할 수 있는 훌륭한 대체 장면들이 많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남자 감독이 여성 간의 정사 장면을 얼마나 잘 알까요? 솔직히 말해, 그저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서비스 장면이라고 느꼈습니다. 영화의 평 등을 찾아보면, 실제 여성 동성애자들은 그렇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케시시의 성폭행 연루라든가, 레아의 영화 촬영 현장이 성 착취에 가까웠다는 발언이라든가, 불편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게다가 원작자 쥘리 마로 역시 정사 장면에 관한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이성애자 남성이 레즈비언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 같았다고 했었죠. 이 영화뿐만 아니라 노골적인 성 묘사에 관한 논란을 예술이라고 말하며 상쇄시키려는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예술이라고요?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감독의 판타지를 표현한다는 생각만이 듭니다. 이 점이 꽤 아쉬웠습니다.
이제 자유롭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해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인지도 때문인지 이 영화에서의 레아 세두를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보다 더 낫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절대 저는 레아가 혹평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레아를 정말 정말 좋아합니다. 이 영화도 레아가 너무 보고 싶었기에 관람한 것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보다 엠마의 비중이 작게 느껴졌기 때문이죠. 러닝타임 3시간 동안 아델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은 없습니다. 3시간의 엄청난 길이의 시간을 힘차게 이끌고 가 준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이 에그자르코풀로스에 초점을 더 맞춰 주기를 바랍니다.
아주 예전에, 그러니까 이 영화가 개봉한지 별로 지나지 않았을 때 포스터를 흘긋 본 적이 있었습니다. 무채색에 한 여자의 머리색만 파랗게 빛나고 있는 포스터. 국내 개봉 포스터에 적힌 '소녀, 사랑에 물들다'라는 문구가 제가 얻을 수 있는 정보의 모든 것이었죠. 저는 처음에, 이 영화가 판타지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웃기죠. 제가 아주 오랜 시간 전에 포스터만 보고 지레짐작한 영화의 분위기와 실제 영화는 정말 180도 달랐습니다. 그렇기에 더 흥미로웠죠.
아, 한 2주 전쯤, 왓챠가 이 영화를 내렸습니다! OTT로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은 왓챠뿐이었습니다. 너무 절망스러운 나머지 방법을 강구하다가, 왓챠 고객센터에 콘텐츠를 신청할 수 있는 란이 있길래 하루에 한 번씩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_ㅠ 이래도 들어오지 않는다면 DVD라도 구매해야 하나, 생각 중입니다.
(저의 간곡한 요청이 와닿은 걸까요? 이제 왓챠에서 이 영화를 시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전합니다. 사람들이 이 영화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에 쥘리에트 비노슈 주연의 1993년 작 <세 가지 색 : 블루> 를 자주 혼동하더라고요. 둘 다 프랑스 영화이고, 제목이 블루가 들어가는 공통점이 있죠. 특히 30대 이상의 사람들은 거의 90%가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30대 이하는 -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 세 가지 색 연작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세 가지 색 연작도 참 명작이죠. 후에 기회가 되면 한번 소개드려 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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